영화 ‘암살자(들)’은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는다.

분석 완료

사건 개요

2026년 9월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당시 수사당국은 재일교포 문세광이 조총련을 통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실패했고, 그 과정에서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문세광은 같은 해 12월 17일 사형이 확정되고, 12월 20일 형이 집행되었다.

영화는 수사기록 등 공식 기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사건에 ‘중정(중앙정보부) 이상’의 개입 가능성을 제기하고, 박정희 정권의 자작극이나 배후 개입 가능성을 암시한다.

 

영화 ‘암살자(들)’ 을 둘러싸고 역사 왜곡 논란이 제기됐다. (출처: 채널 A)

개봉 이후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처럼 묘사해 역사를 왜곡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 등 관련 인물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상영 중단과 법적 책임을 요구하는 주장과, 영화적 상상력에 대한 제한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주장 분석

이 주장을 검증하려면 먼저 영화가 실제로 어떤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고 있으며, 그중 어떤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다른 허구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 역사적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는 것만으로 표현의 자유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사상이나 의견을 전달하는 표현수단인 동시에 예술적 창작물이다. 어떤 소재를 선택하고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묘사할 것인지는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에 포함되며 두텁게 보호된다.

실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의 경우에는 역사적 사실의 왜곡이나 관련 인물의 명예·인격권 침해가 문제될 수 있다. 결국 표현·예술의 자유와 명예·인격권이 충돌하는 사안이다.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어느 범위까지 허구가 허용되는지 우리나라 판례를 살펴보고,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과 인격권 보호를 중시하는 독일의 판례와 비교하여 우리 판례가 국제적 기준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도 검토한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는 작품이 픽션(fiction)임을 명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지가 영화 속 허구를 실제 역사적 사실과 구별하게 하는지, 나아가 법적 책임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표현이 법적 한계를 넘은 경우 어떤 법적 책임이 발생하는지 검토한다. 특히 영화 자체의 상영을 금지하는 것과 상영 이후 민·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영화 ‘암살자(들)’이 표현·예술의 자유로 보호되는지 판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검증한다.

1. 영화 ‘암살자(들)’에서 논란이 되는 내용은 무엇인가?
2.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허구도 표현·예술의 자유로 보호되는가?
3. 픽션임을 명시한 경우 법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4. 표현·예술의 자유의 한계를 넘은 경우 어떤 법적 책임을 지는가?


사실 검증

사실 검증 1

영화 '암살자(들)'에서 논란이 되는 내용은 무엇인가?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 사건을 소재로 한다. 당시 합동수사본부는 재일교포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실패했고, 그 과정에서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문세광에게 내란목적살인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사형을 선고하였고, 그해 12월 20일 형이 집행되었다. 이 글에서는 확정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을 역사적 사실의 기준으로 삼는다.

영화는 이러한 공식 수사결과를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사건에 남아 있는 의문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현장 경호를 담당했던 형사와 신문사 사회부장·기자 등 가상의 인물들이 사건을 추적하면서 문세광에게 공범이 있었을 가능성, 육영수 여사를 맞힌 총탄이 문세광이 쏜 것이 아닐 가능성, 나아가 당시 권력기관이 사건에 개입하거나 사전에 인지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영화는 김대중 납치 사건, 언론 검열과 중앙정보부의 활동 등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함께 배치하여 이러한 의혹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영화는 김대중 납치 사건, 한일관계와 경제협력, 서울지하철 개통, 자유언론실천선언과 언론인 탄압, 중앙정보부의 활동 등 당시의 실제 사건들을 함께 배치하여 이러한 의혹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역사적 사건들의 시간적·인과적 관계를 재구성하여 하나의 정치적 서사로 연결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특히 사건의 배후와 관련하여 ‘중정(중앙정보부) 윗선’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권력을 지키는 게 목숨보다 중요하다면?”, “처음부터 타깃이 각하가 아니라 육 여사?”같은 대사가 나온다. 이 때문에 ‘중정 윗선’이 당시 최고 권력자인 박정희 대통령을 의미하며,  대통령이 부인의 피격을 지시했을 가능성을 관객에게 암시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영화는 이러한 의혹을 확정된 사실로 결론짓지는 않는다. 허진호 감독은 이 부분이 논란이 되자 ‘중정 윗선’과 박정희 대통령을 “분리해서 생각했다”고 해명하였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고 부인이 희생될 수도 있는 일을 지시했다는 설정은 생각하지 않았으며, 김대중 납치 사건 이후 위기에 놓인 중앙정보부 내부의 권력투쟁이나 조직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어떤 일을 벌였을 가능성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결론 (근거 수준: 강)
영화는 공식 수사·재판 결과와 다른 가능성을 영화적 가설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중정 윗선’의 개입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사건을 지시하거나 배후에 있었다는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명시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사실 검증 2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허구도 표현·예술의 자유로 보호되는가?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

영화는 예술적 창작물로서 헌법 제22조 제1항의 예술의 자유로 보호되며, 동시에 사상과 의견을 전달하는 표현수단으로서 헌법 제21조의 표현의 자유로 보호된다.

예술의 자유가 무제한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적 표현도 타인의 명예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경우 제한될 수 있다. 실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는 예술·표현의 자유와 실존 인물 및 유족의 명예·인격권이 충돌할 수 있으며, 법원은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여 두 법익을 비교·형량한다.

영화 ‘실미도’ 판결

대법원은 2010년 영화 ‘실미도’가 실미도 부대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미도’는 대북 특수부대인 684부대를 소재로 한 상업영화다. 유족들은 영화가 부대원들을 살인범이나 사형수 등으로 묘사하고 북한 군가인 ‘적기가’를 부르는 장면 등을 삽입함으로써 허위사실을 적시하고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영화 ‘실미도’ 포스터

대법원은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영화의 허용 범위에 관하여 몇 가지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였다.

첫째, 실제 인물이나 사건을 모델로 한 영화가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더라도,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익을 목적으로 하고 제작자가 이를 진실이라고 믿었으며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없다.

둘째, 역사적 사실인 경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차 망인이나 그 유족의 명예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탐구 또는 표현의 자유가 보호되어야 하며 또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의 한계로 인하여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 용이하지 아니한 점 등도 고려되어야 한다.

셋째, 상업영화의 경우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더라도 영화제작진이 상업적 흥행이나 관객의 감동 고양을 위하여 역사적 사실을 다소 각색하는 것은 의도적인 악의의 표출에 이르지 않는 한 상업영화의 본질적 영역으로 용인될 수 있다.

넷째, 일반 관객으로서도 영화의 모든 내용이 실제 사실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전제에서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극적 허구 사이의 긴장관계를 인식ㆍ유지하면서 영화를 관람할 것인 점도 그 판단에 참작할 필요가 있다.

영화 ‘아버지의 전쟁’ 결정

대법원은 2019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발생한 고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아버지의 전쟁’의 제작·상영금지를 구한 사건에서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일정한 각색은 상업영화의 본질적 영역으로 허용된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사망자를 소재로 한 영화가 명예훼손에 해당하려면 사회적·역사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구체적인 허위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하며, 이는 통상의 건전한 상식을 가진 합리적인 관객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일부 허구적인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정만으로 명예·인격권 침해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며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 판결

2005년 개봉한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1979년 10월 26일 발생한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을 소재로 한 블랙코미디 영화다.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는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고 유족의 추모 감정을 침해했다며 상영금지 가처분과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법원은 영화 자체의 상영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다만 영화 앞뒤에 삽입된 실제 다큐멘터리 장면이 관객에게 영화 전체가 실제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보아 3분 50초에 이르는 다큐멘터리 장면을 삭제하도록 하였다.

이후 손해배상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06년 영화사가 박지만 씨에게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였다. 재판부는 영화의 묘사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유족의 경애와 추모의 정을 침해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2008년 항소심 진행 중 양측이 조정에 합의하면서 1심 판결은 확정되지 않았다. 제작사가 “이 영화는 역사의 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상상력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세부사항과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는 모두 픽션입니다.”라는 자막을 삽입하기로 하는 대신, 가처분 결정으로 삭제됐던 다큐멘터리 장면을 복원하여 상영할 수 있게 되었다. 박지만 씨는 1억 원의 손해배상금을 되돌려주고, 영화사는 유족들에게 상처를 준 점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였다.

소결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사실에 허구와 각색을 더하는 것 자체는 예술·표현의 자유로 보호되며, 어느 정도의 역사적 사실과 다른 묘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명예훼손이나 인격권 침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상업영화에서는 어느 정도의 각색과 허구가 영화의 본질적 영역으로 인정된다.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는 점과 일반 관객 역시 영화에 역사적 사실과 극적 허구가 혼재되어 있음을 인식한다는 점도 표현의 자유를 넓게 인정하는 요소가 된다.

다만 허구와 각색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을 모델로 한 영화가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특정인의 명예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역사적 사실과 다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내용과 방법, 공익성, 사실이라고 믿은 근거와 상당한 이유, 피해 정도,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경과한 시간, 그리고 일반 관객이 역사적 사실과 극적 허구의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비교법적 검토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에서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이 충돌하는 문제는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난다. 여기서는 표현의 자유를 강하게 보호하는 미국과 인격권 보호를 중시하는 독일의 판례를 비교하여 우리나라 판례가 국제적 기준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살펴본다.

미국

미국은 수정헌법 제1조(First Amendment)에 따른 표현의 자유 보호가 매우 강력하다. 공인 (public figure)의 경우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인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제작사의 ‘현실적 악의’ (actual malice)를 입증해야 한다. 즉 공인은 제작사가 허위 사실임을 알았거나, 진실 여부를 무모하게 무시해서 영화를 제작하였음을 입증해야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다. 현실적 악의를 입증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인 (private figure)인 경우 현실적 악의 법리가 적용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승소 가능성이 높다. 사인의 경우 책임 성립에 현실적 악의가 요구되지 않고 (주에 따라) 과실 입증으로 충분하다. 다만 영화의 소재가 공적 관심사인 경우에는 추정·징벌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현실적 악의를 입증해야 한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의 경우, 원고를 아는 합리적인 시청자가 영화 속 인물을 원고로 인식할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Greene v. Paramount Pictures).

영화 ‘JFK’ 사례

올리버 스톤 감독의 ‘JFK'(1991)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과, 뉴올리언스 지방검사 짐 개리슨(Jim Garrison)이 사업가 클레이 쇼(Clay Shaw)를 암살 공모 혐의로 기소하여 1969년 쇼의 무죄로 끝난 실제 형사재판을 소재로 하면서 상당한 허구를 가미하였다.

영화에서 데이비드 페리(David Ferrie)는 오스왈드(Lee Harvey Oswald)와 CIA 등이 관련된 암살 음모를 사실상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이를 부인하였다. 케빈 베이컨이 연기한 윌리 오키프(Willie O’Keefe)는 여러 인물과 증언을 결합한 허구의 인물이다. 도널드 서덜랜드가 연기한 Mr. X와 개리슨의 만남 역시 영화적으로 창작된 것이다. 이처럼 ‘JFK’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인물·대화·사건을 재구성하여 암살 배후에 관한 하나의 가설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사실과 허구의 혼합으로 큰 논란이 일었지만, 이를 이유로 영화의 상영이 금지되거나 명예훼손 책임이 인정된 대표적인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영화의 핵심 인물인 케네디, 오스왈드, 페리, 쇼 등은 영화 개봉 이전에 모두 사망하였는데,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망한 사람에 대한 명예훼손 청구를 인정하지 않고 유족도 자신의 명예가 직접 훼손된 경우가 아니면 소를 제기할 수 없다.

나아가 미국에서는 공직자·공인이 명예훼손 책임을 묻는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표현자가 허위임을 알았거나 진실 여부를 무모하게 무시했다는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입증해야 하는 등 공적 관심사에 관한 표현을 강하게 보호한다.

독일

독일은 예술의 자유와 일반적 인격권이 충돌할 경우 구체적 사정에서 두 법익 간 비교형량을 통해 실질적 해결책을 모색한다. 하지만 판례는 인간의 존엄을 기초로 하는 일반적 인격권을 강하게 보호하며, 특히 표현이 사생활의 핵심이나 친밀영역에 가까울수록 인격권 보호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1969년 레바흐 군부대 살인 사건을 다룬 다큐드라마 방송을 앞두고, 형 집행 종료를 앞둔 가담자가 인격권 침해를 이유로 방송 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사건에서, 연방헌법재판소는 실명과 사진을 사용하여 범죄를 다시 상세히 보도하는 것은 그의 사회복귀 이익을 해친다고 보아, 방송을 허용한 하급심 결정을 취소하였다(Lebach 판결).

2007년 소설 Esra 사건에서 연방헌법재판소는 소설이 예술작품으로서 허구성을 전제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실제 인물과 작품 속 인물의 일치 정도가 높아질수록 인격권 침해의 가능성도 커진다고 보았다. 특히 전 연인의 친밀영역을 묘사한 부분에 대해 소설의 출판·배포 금지를 부분적으로 인정하였다.

상업영화 역시 인격권 침해가 중대하면 상영금지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 2001년 로텐부르크 식인 사건을 다룬 영화 ‘Rohtenburg’에 대해, 프랑크푸르트 고등법원은 실제 범죄자의 인격권을 예술의 자유보다 우선시하여 상영·배포를 금지하였다.

그러나 연방대법원(BGH)은 2009년 이를 뒤집고 상영금지 청구를 기각하였다. 연방대법원은 상업영화도 기본법 제5조 제3항의 예술의 자유로 보호되며, 실제 범죄에 허구적 요소를 결합했다는 이유만으로 보호영역에서 제외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특히 원고가 형사재판 전후 독점 인터뷰와 계약 등을 통해 자신의 범죄와 인격을 대중에게 자발적으로 공개해 왔다는 점을 중시하였다.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에서 가해자에 대한 왜곡된 비난이나 부당한 낙인찍기가 없는 한, 공적 정보 이익과 예술의 자유가 원고의 인격권보다 우선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소결

미국과 독일 모두 실제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에 허구적 요소를 가미하는 것 자체는 표현·예술의 자유로 보호하지만, 실존 인물의 명예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여, 공인의 경우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요구하고 허구의 인물이 실존 인물로 인식되는지는 합리적 시청자(reasonable viewer)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독일은 예술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면서도 일반적 인격권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보호한다. 특히 실존 인물과의 일치 정도, 사생활·친밀영역의 침해, 범죄자의 사회복귀 이익 등을 구체적으로 형량한다. 다만 당사자가 스스로 사건과 자신의 인격을 공론장에 공개한 경우에는 인격권 보호의 필요성이 낮아질 수 있다.

결론 (근거 수준: 강)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더라도 허구와 각색을 가미하는 것 자체는 표현·예술의 자유로 보호된다. 다만 실존 인물의 명예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점은 우리 판례뿐 아니라 미국과 독일의 판례에서도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관련 자료

사실 검증 3

픽션임을 명시한 경우 법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지만 세부 내용은 픽션”이라는 면책문구(disclaimer)를 자막으로 제공한 경우, 이는 법적 책임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먼저 픽션임을 명시하면 관객이 영화의 모든 내용을 실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아진다. 영화 ‘실미도’ 사건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영화제작자가 자막에 각색 사실을 분명하게 명시하여 일반 관객이 영화의 내용과 실제 사실관계가 다르다는 점을 쉽게 인식하도록 하는 등, 영화 내용과 실제 상황의 혼동을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를 인격권 침해 여부의 판단에서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06. 12. 6. 선고 2005나68532 판결).

실제로 법원은 ‘실미도’의 극장 상영 당시 자막은 영화 내용 자체가 실제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알리는 데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다. 반면 이후 DVD 등에 추가된 자막은 영화의 구체적인 상황설정과 표현이 “문학적 상상력에 의존”하였고 훈련병의 출신성분이나 훈련과정 등에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명시하였다는 점에서, 관객이 영화 내용과 실제 사실관계를 혼동하는 것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사건에서도 개봉 당시부터 세부사항과 등장인물의 심리묘사가 픽션이라는 취지의 자막이 있었으나, 1심 본안은 상영금지 청구는 기각하면서도 1억 원의 위자료 지급을 명하였다. 항소심은 조정으로 종결되었는데, 제작사가 자막에 “상상력에 기초”하였다는 문구를 추가하고 유감을 표명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로 하였으며, 박지만 씨는 1심에서 받은 1억 원을 반환하였다.

그러나 픽션이라는 자막만으로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때 그 사람들’ 사건에서도 이미 픽션이라는 취지의 자막이 있었음에도 1심에서 위자료가 인정되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막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영화의 내용과 표현방식, 자막의 구체적인 내용 등을 종합할 때 관객이 문제된 묘사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영화적 허구로 받아들이는지이다.

대법원도 영화 ‘아버지의 전쟁’ 사건에서 사망한 인물을 모델로 한 영화에 허위사실의 적시가 있었는지는 “통상의 건전한 상식을 가진 합리적인 관객”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9. 3. 6.자 2018마6721 결정).

미국에서도 허구의 인물이 원고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원고를 아는 합리적인 시청자(reasonable viewer)가 해당 인물을 원고로 인식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며, 허구라는 고지가 있더라도 이를 종결적인 사유로 보지는 않는다(Muzikowski v. Paramount Pictures Corp., 322 F.3d 918 (7th Cir. 2003)).

결론 (근거 수준: 강)
픽션이라는 고지는 명예·인격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자체로 법적 책임을 면제하지는 않는다.

사실 검증 4

표현·예술의 자유의 한계를 넘은 경우 어떤 법적 책임을 지는가?

법적 책임은 영화의 상영을 사전에 금지하는 경우와 상영 이후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상영금지

영화가 타인의 명예나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해서 곧바로 영화의 상영을 사전에 금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헌법 제21조 제2항은 표현물에 대한 사전검열을 금지한다. 헌법재판소가 금지하는 사전검열은 행정권이 주체가 된 사전심사만을 의미하므로(헌재 1996. 10. 4. 93헌가13 등; 헌재 2001. 8. 30. 2000헌가9), 사법부인 법원의 상영금지 가처분은 헌법상 금지되는 사전검열에 해당하지 않는다(헌재 2001. 8. 30. 2000헌바36). 그러나 법원에 의한 상영금지 가처분도 표현·예술의 자유를 사전에 제한하는 조치이므로 엄격한 요건 아래 예외적으로만 허용된다.

‘실미도’ 상영금지 가처분 사건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실제 사건이나 인물을 모델로 한 영화가 명예나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 피해자나 유족이 상영금지 등을 청구할 수 있다고 인정하였다. 다만 법원이 예술적 창작물의 상영을 금지하거나 내용을 직접 수정·삭제하도록 명하는 것은 예술의 자유를 직접 제한하는 것이므로, 인격권의 핵심적 내용이 중대하게 훼손되는 경우 등으로 한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서울고법 2005. 1. 17.자 2004라439 결정).

대법원 역시 표현행위에 대한 사전금지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안 되며, 그 표현내용이 진실이 아니거나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경우로서, 피해자에게 중대하고 현저하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힐 우려가 있는 때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05. 1. 17.자 2003마1477 결정).

상영 이후의 민사책임

영화가 상영된 이후에는 그 내용으로 인해 타인의 명예나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사망한 사람에 대해서도 유족의 권리가 문제될 수 있다. 대법원은 “어떠한 표현행위가 사망한 사람에 대한 허위사실의 적시나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는 등으로 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격권을 침해한 때에는 그 유족이 자신의 명예 또는 망인에 대한 경애, 추모감정 등의 침해를 이유로 민법상 손해배상청구, 침해행위 배제·금지청구 등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유족의 추모감정 등이 침해되었는지는 표현의 내용과 형식, 망인과 유족의 관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판단한다(대법원 2026. 2. 12. 선고 2022다284711, 284728 판결).

따라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영화의 허구적 묘사가 그 유족의 명예나 경애·추모감정 등 인격적 이익을 침해할 정도에 이른 경우에는 민사상 손해배상이나 침해행위의 금지 등이 문제될 수 있다.

사자명예훼손죄

사망한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는 형법 제308조의 사자명예훼손죄가 문제될 수 있다.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자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 성립하며, 행위자가 적시한 사실이 허위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에도 사자명예훼손죄가 적용될 수 있다. 대법원은 역사드라마  ‘서울1945’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과 장택상 전 국무총리 가 여운형 암살의 배후인 것처럼 묘사한 장면이 사자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된 사건을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역사드라마의 경우 묘사된 사실이 이야기 전개상 상당한 정도 허구로 승화되어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로 오해되지 않을 정도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 등 여러 사정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 사건에서는 허구적인 이야기가 실제 사실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를 허위사실의 적시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확정하였다(대법원 2010. 4. 29. 선고 2007도8411 판결).

결론 (근거 수준: 강)
영화에 대한 사전적 상영금지는 중대하고 현저한 손해 우려 등 엄격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반면 상영 이후에는 명예·인격권 침해가 인정되는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검증 결과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허구를 가미한 영화는 원칙적으로 표현·예술의 자유로 보호받는다. 영화 ‘암살자(들)’ 역시 그렇다. 다만 합리적인 관객이 박정희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의 살해에 관여하거나 이를 지시한 것으로 받아들일 정도에 이를 경우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유족의 경애·추모감정 등 인격적 이익을 침해하여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의견 비교

의견 1

'암살자(들)' 상영중단 압박은 시대착오적 검열

“역사적 사실을 지키는 가장 지혜롭고 올바른 방법은 불편한 질문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에 납득할 만한 해답을 내놓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가 못마땅하면 사실과 다른 부분을 짚어 비판하면 그만이다. 역사학자는 사료로 반박하고, 언론은 철저히 팩트를 검증하면 된다. 그리고 최종적인 평가는 영화를 마주한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면 충분하다.

그런데도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영 자체를 막아세우려 한다면, 그것은 진실을 수호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나와 다른 해석을 용납하지 못한 채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려는 구시대적 검열의 낙후된 사고방식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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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2

창작의 자유와 정치 선전의 경계 넘나든 ‘암살자(들)’

“역사적 상상력은 기본적으로 허용돼야 한다. 그러나 실제 역사와 다른 인과 관계를 멋대로 창작해 특정 정치적 성향에 부합하는 결론을 유도한다면 역사극과 정치 프로파간다의 경계는 흐려진다. ‘암살자(들)’은 그런 오류를 범했다.

젊은 세대의 역사 감수성은 예민하다. ‘암살자(들)’에 대한 2030의 비판에서는 ‘영화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완고한 입장보다 ‘왜 그동안 5·18 등이 관련된 사안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느냐’는 형평성 요구가 두드러진다.

‘암살자(들)’ 논란이 영화 한 편의 사실 검증을 넘어 문화전쟁으로 번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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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3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상업영화의 명예훼손 판단기준

“영화의 내용이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영화의 객관적인 내용과 함께 영화 내용의 전체적인 흐름, 이야기와 화면의 구성방식, 사용된 대사의 통상적인 의미와 그 연결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영화 내용이 보통의 주의로 영화를 접하는 관객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도 그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하고,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보다 넓은 주제나 배경이 되는 사회적 흐름 등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영리 목적으로 일반 대중을 관람층으로 예정하여 제작되는 상업영화의 경우에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더라도 영화제작진이 상업적 흥행이나 관객의 감동 고양을 위하여 역사적 사실을 다소 각색하는 것은 의도적인 악의의 표출에 이르지 않는 한 상업영화의 본질적 영역으로 용인될 수 있다.
또한 상업영화를 접하는 일반 관객으로서도 영화의 모든 내용이 실제 사실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전제에서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극적 허구 사이의 긴장관계를 인식·유지하면서 영화를 관람할 것인 점도 그 판단에 참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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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및 정정

2026-10-06

최초 발행 · 작성 문재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