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정당에 대한 선거권자의 지지에 비례하여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다. 우리나라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후보자 개인이 아니라 정당에 투표하고, 정당이 얻은 득표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한 뒤 정당이 제출한 후보자 명부의 순위에 따라 당선자를 결정한다. 따라서 어느 정당에서 몇 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당선되는지는 원칙적으로 그 정당에 대한 선거권자의 지지에 의해 결정된다.
비례대표 국회의원도 당선된 이후에는 지역구 국회의원과 동일하게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다. 헌법재판소는 1994년 결정에서 “자유위임하의 국회의원의 지위는 그 의원직을 얻은 방법 즉 전국구로 얻었는가, 지역구로 얻었는가에 의하여 차이가 없다”고 판시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별도의 법률규정이 없는 한 전국구 국회의원이 자신을 공천한 정당을 탈당했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의원직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헌재 1994. 4. 28. 92헌마153).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어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당적 변경에 제한이 도입됐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192조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나 당선인이 소속 정당의 합당·해산 또는 제명 외의 사유로 당적을 이탈·변경하는 경우 의원직 또는 당선인 지위를 유지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반면 소속 정당에서 제명된 경우는 예외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 정치에서는 이 예외를 이용하여 비례대표 의원이나 당선인이 소속 정당에서 제명된 뒤 다른 정당으로 옮기면서 의원직이나 당선인 지위를 유지하는 방식이 사용돼 왔다.
이러한 방식이 공직선거법의 취지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이 있다. 전학선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례대표 의원에 대한 ‘제명’과 그 이후 다른 정당에 ‘입당’하는 것은 별개의 행위라고 본다. 제명된 비례대표 의원이 무소속으로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후 다른 정당에 입당하는 것은 새로운 당적 변경에 해당하므로 의원직을 상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따르면 제명이라는 예외를 이용하여 비례대표 의원이 다른 정당으로 이동하면서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비례대표 의석이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투표를 통해 배분된다는 점을 중시하는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우리나라는 정당득표율과 의석수 사이의 비례성을 높이기 위해 2020년 제21대 총선부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정당의 지역구 의석수가 정당득표율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그 부족분의 일부를 비례대표 의석으로 보정하는 방식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지역구에서 많은 의석을 얻은 정당일수록 비례대표 의석을 추가로 배분받기 어려워진다. 이에 지역구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과 비례대표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을 분리하여 양자의 연동을 차단할 유인이 생겼다.
자유한국당은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선거를 위한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했다. 이후 자유한국당은 다른 보수정당들과 통합하여 미래통합당이 됐다. 더불어민주당도 이에 대응하여 기본소득당·시대전환 등과 함께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했다.
기본소득당은 자체 명의로 비례대표 선거에 참여하는 대신 더불어시민당에 용혜인을 추천했다. 용혜인은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된 뒤 제명되어 기본소득당으로 복귀했다. 이러한 복귀는 선거 후 새롭게 결정된 것이 아니라 더불어시민당 출범 당시부터 예정돼 있었다.
제22대 총선에서도 같은 구조가 반복됐다. 국민의힘은 국민의미래를 통해 비례대표 선거에 참여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새진보연합·진보당·시민사회 등과 더불어민주연합을 구성했다. 새진보연합은 더불어민주연합에 용혜인을 추천했고, 용혜인은 비례대표로 당선된 뒤 제명되어 새진보연합으로 복귀했다.
헌법재판소도 이러한 위성정당의 발생 구조를 지적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지역구 선거에서 정당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정당이 비례대표 선거에만 참여하는 위성정당을 만들어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의 연동을 차단할 유인이 강하게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제21대와 제22대 총선에서는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이 비례대표 선거에 참여해 추가 의석을 얻으면서 양당체제가 심화되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평가했다(헌재 2026. 1. 29. 2020헌마956등).
결국 이러한 현상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이후 위성·비례연합정당이 만들어지고, 소수정당이 그 정당에 후보자를 추천한 뒤 당선자를 원래 정당으로 복귀시키는 방식을 통해 나타났다. 여기에 제명을 당적 이탈·변경의 예외로 인정하는 공직선거법 규정이 이러한 복귀를 가능하게 했다.
비례대표제의 원리에는 부합하는가?
앞서 확인했듯이 기본소득당은 제21대와 제22대 총선에서 자체 명의로 비례대표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고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지도 않았다. 그러나 용혜인 의원은 두 차례 모두 다른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된 뒤 제명과 복귀 절차를 거쳐 기본소득당 소속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다. 그 결과 비례대표 선거에서 의석을 배분받지 않은 기본소득당이 두 차례에 걸쳐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보유하게 되었다.
특히 이러한 당적 변경은 선거 이후 정치적 사정의 변화에 따라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기본소득당은 선거 전에 비례연합정당에 후보자를 추천하고, 당선 후에는 해당 의원이 원래 정당으로 복귀하는 것을 전제로 선거에 참여했다.
이는 일반적인 당적 변경과는 성격이 다르다. 정당투표를 통해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지 않은 정당이 다른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와 예정된 제명·복귀 절차를 이용하여 결과적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보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189조 제2항이 선거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위성정당과 같은 선거전략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을 수 있지만, 정당의 선거전략으로 실제 선거에서 제도의 취지와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자체를 위헌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헌재 2023. 7. 20. 2019헌마1443등).
그러나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자체의 위헌 여부가 아니라, 비례대표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정당이 다른 정당의 후보자 명부와 예정된 제명·복귀 절차를 통해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보유하는 것이 비례대표제의 원리에 부합하는지 여부다.
비례대표 의원도 당선된 이후에는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지역구 의원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석의 배분 자체는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투표 결과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공직선거법이 비례대표 의원의 자발적인 당적 이탈·변경에 의원직 상실이라는 효과를 부여한 것도 비례대표 의석과 정당투표 사이의 관계를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선거 전부터 다른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된 뒤 원래 정당으로 복귀할 것을 예정하고 제도를 이용하는 것은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에 비례하여 의석을 배분한다는 비례대표제의 원리와 긴장관계에 있다.
나아가 제명 후 다른 정당에 입당하는 것을 별도의 당적 변경으로 보아 의원직을 상실해야 한다는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방식은 현행 공직선거법의 취지에도 부합하기 어렵다.